농부들의 화가로 불렸던 장 프랑수아 밀레
장 프랑수아 밀레는 1814년 프랑스의 그뤼시라는 작은 농촌마을에서 중산층 농가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그는 어린 시절 농부의 삶을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고 이 경험은 이후 밀레의 예술세계를 결정짓는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밀레는 세르부르와 에꼴 드 보자르에서 미술 훈련을 받고 처음에는 초상화를 그리고 이후에는 생계를 위해 누드화나 간판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1849년 파리에 콜레라가 유행하자 거처를 바르비종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때 직전에 그린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1848년)'이 살롱전에 전시되고 프랑스 정부가 이 그림을 구매하면서 자연주의 화가로서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바르비종으로 이사를 한 이후에는 그림을 그리며 농사도 짓는 전원생활을 하였는데 이대 바르비종파 화가들과 어울리며 창작열을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다른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숲과 자연을 주제로 한 사실적인 풍경화를 그린 반면에 밀레의 화풍은 다른 바르비종파와는 조금 달리 농촌의 풍경을 담고 그 안에 인물이 함께 있었던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밀레의 작품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묵묵하게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러한 정적인 분위기가 농부들의 고단한 삶의 무게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어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그를 사회혁명가로 보기도 했습니다.
* 바르비종파 : 프랑스에서 발달한 풍경화파 중 하나로 이 지역에 모여든 화가들로부터 시작되어 바르비종파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자연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그림 속에 표현했고 사실적인 풍경 묘사를 통해 다시 아카데미파 특유의 역사 풍경화의 형식적 표현을 반대하였습니다.
밀레는 빈곤한 삶을 살다가 30대 중반부터 명성을 얻으면서 생활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50세가 지나면서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의 전시와 레종드뇌르 훈장을 받게 되면서 명성이 더욱 높아지게 되고 몇 년 후에는 살롱전의 심사위원도 맡게 됩니다. 그러나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면서 1875년 61세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밀레의 작품들은 빈센트 반 고흐의 초기작에 특히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풍경화들은 클로드 모네의 작품들에도 영향을 줍니다. 또한 밀레의 구도나 상징적인 요소들은 쇠라의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농민들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낸 [이삭 줍는 여인들]
1875년 살롱전에 출품되었던 [이삭 줍는 여인들]은 밀레의 대표작들 중 하나로 현재는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림 속의 여인들은 수확을 끝낸 보리밭에 떨어져 있는 보리 이삭들을 줍고 있는 중입니다. 뒤쪽에 산더미처럼 곡식들이 쌓여 있지만 이 여인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며 아마도 그림 오른쪽 멀리에 보이는 말을 타로 앉아 있는 사람이 밭의 주인이거나 감독일 것입니다.
여인들 중 붉은 머릿수건을 두르고 있는 여인은 왼손으로 이삭을 주워 오른손으로 이삭을 앞치마 주머니에 담고 있습니다. 주머니가 볼록한 것으로 보아 이미 꽤 오랜 시간 이 작업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누런 머릿수건을 두르고 있는 여인은 허리를 반쯤 세우고 있는데 아마도 장시간 허리를 굽히면서 진행이 되어온 작업이 힘들어서 잠시 허리를 폈거나 다시 굽히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파란 두건을 두르고 있는 여인 또한 한 손을 허리에 대로 있는 것으로 허리가 불편한 듯 보입니다.
얼굴은 비스듬한 자세 때문에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기존의 회화에서 주로 보여지는 여성미는 볼 수 없으며 그 대신 묵묵히 노동에 열중하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별다른 표정 없이 사실적으로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이들이 농촌사회 최하층의 여인들이기는 머리는 단정하게 두건에 가려져 있고 입고 있는 옷도 많이 남루하거나 더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밀레는 여인들의 모습을 초라하게 표현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나감으로써 이들의 자존심과 품위를 지켜주고자 했을 것입니다.
멀리 오른쪽 상단에는 추수꾼 무리들도 보입니다. 이 추수 인부들과 밀짚 더미가 있는 뒤쪽 부분은 노을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는 반면에 앞쪽의 세 여인들 아래로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직접적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극적인 대비로 인하여 이 그림이 빈부격차를 고발하고 있으며 농민과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밀레는 이런 주장에 대하여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였고 그저 농촌 풍경을 그린 것뿐이라 반박했다고 합니다.
작품을 실제 보았을 때의 느낌
2015년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았습니다. 명성에 비해 작품의 크기가 작고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한 분위기라 작품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으며 솔직히 처음에는 이 작품이 내가 아는 그 작품이 맞는 건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을 바라보면서 그림에 대한 느낌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밀레는 그의 작품들 속에서 결코 농부들의 모습을 지나치게 비참하게 그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미화하여 그리지도 않고 있습니다. 다만 정직하게 땀 흘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어 가만히 그림을 바라 볼 수록 마음에 더 깊은 울림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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