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낭만회화의 선구자 테오도르 제리코
테오도르 제리코는 1793년 프랑스 루앙의 부유한 가정에서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최고의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하고 이른 나이에 상속을 받아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여러 여성과 스캔들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21살 때 살롱전에 [돌격하는 경기병]을 출품하였는데 정열적인 색채와 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 작품을 통해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후 이탈리아에서 유학하여 그림을 배우게 되며 특히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에 감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귀국 후 메두사호 사건을 알게 되면서 작품을 준비하게 되는데 철저한 준비 끝에 18개월 만에 완성한 이 작품은 1819년 살롱전에 출품되어 금메달을 수상하게 됩니다. 가로 7m 세로 5m에 이르는 매우 큰 크기에 실제 사건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표현이 되어 있는 탓에 찬사와 함께 불편해하며 그림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았었는데 어쨌든 제리코는 이 작품으로 프랑스 내에서 크게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불과 5년 뒤인 1824년에 33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낙마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실제 화가로 활동한 기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하여 유화 191점, 소묘 180점, 석판화 100여 점에 조각 작품에 이르기까지 수백 작품을 남겼습니다.
[메두사호의 뗏목]의 배경이 된 사건
제리코가 26살때 발표한 [메두사호의 뗏목]은 실제 있었던 끔찍한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1816년 프랑스에서 식민지 세네갈로 향하던 메두사호가 암초에 걸려 침몰하게 되는데 이때 선장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은 모두 구명정을 타고 평민들은 뗏목을 타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귀족들이 구명정에 줄을 매어 뗏목을 해안까지 이끌어주기로 하였으나 고의인지 사고인지 밧줄은 끊어지게 되고 이들은 13일 동안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게 됩니다.
얼마 안되는 물과 식량으로 인해 부상자는 바다로 떠밀리게 되었으며 식량이 떨어지자 일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먹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후 겨우 지나가던 영국 선박에 의해 구조가 되었지만 처음 뗏목에 있던 150여 명 중 구조가 된 생존자는 15명뿐이었고 심지어 5명은 구조된 이후 사망하여 결국 마지막에 목숨을 건진 사람은 겨우 10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당시 프랑스 왕실과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숨기기에만 급급했고 결국 이 내용을 책으로 펴낸 생존자에 의해 사건이 크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리코도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크게 분노하여 사건을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제리코는 이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을 모델로 그리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관찰하고 영안실을 드나들며 시신의 부패과정을 살피면서 치밀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뗏목 모형을 직접 만들어 바다에 띄워 타보기도 하고 며칠을 해안가에서 지내면서 날씨와 파도의 변화를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 끝에 완성된 그림은 특히 부르봉 왕가를 신봉하는 이들이 작품을 불쾌하게 여기고 없애버리려고도 하였으나 오히려 루이 18세가 안전하게 그림을 지킬 수 있도록 루브르 궁전 내 미술관에 보관하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작품 [메두사호의 뗏목]의 특징
제리코는 생존자들이 지나가는 배를 보고 구호를 요청하는 순간을 그려냈습니다. 그런데 멀리 배가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가득하고 파도는 높게 일고 있어 언제 뗏목이 뒤집힐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건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림을 보는 사람의 극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이런 류의 작품을 '낭만주의 미술'이라고 부르는데 제리코가 바로 이러한 낭만주의 화풍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특히 크고 작은 두개의 피라미드 구도로 그려진 점이 특징입니다. 배를 발견하고 크게 손을 흔드는 인물의 손을 꼭짓점으로 하여 피라미드 한 개가 그려지고 돛의 꼭대기 부분을 꼭짓점으로 해서 역시 더 큰 피라미드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면의 주요 요소가 이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그림이 더욱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또 구름은 어둡게, 수평선은 밝게 묘사하고 왼쪽 하단의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과 오른쪽 상단의 구조를 기다리며 희망을 가진 사람들을 대비시켜 더욱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빛의 대비에서 얻어지는 강렬한 효과와 생동적인 사실주의를 통해 엄청난 에너지와 강도 높은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뗏목 모서리에는 금방이라도 바다로 휩쓸려갈 듯 보이는 시신들이 있는데 18세의 조수 알렉시 지미가 막 바다로 미끄러질 듯한 시신의 모델을 했으며 친한 후배인 외젠 들라크루아도 선배를 위해 모델로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앞쪽에 머리를 묻고 팔을 뻗고 있는 사람이 델라크루아. 델라크루아는 이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나중에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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