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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브뢰헐의 [농가의 결혼식]이 좋은 이유

by 날고싶은닭 2022. 2. 9.

피터르 브뢰헐, [농가의 결혼식], 1568,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유럽 미술사상 최초의 농민 화가 피터르 브뢰헐

 

이번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인 피터르 브뢰헐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의 이름 Pieter Bruegel은 언어에 따라 브뤼겔, 브뢰헬 등 다양하게 읽히고 있는데 대학교 때 네덜란드어를 전공한 제가 네덜란드식 발음으로 들어본 결과 '브뢰헐'로 표기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브뢰헐 가문은 16, 17세기에 걸쳐 여러 명의 화가를 배출한 집안입니다. 그중에서 이번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대(大) 브뢰헐이 가장 많이 알려졌으며 그의 장남 소(小) 브뢰헐과 얀 브뢰헐도 유명합니다.

 

사실 대(大) 피터르 브뢰헐의 생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내용이 극히 적다고 합니다. 다만 그가 1551년에 안트베르펜 화가 조합에 가입을 했는데 이를 근거로 1525년에서 153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태어난 곳 또한 네덜란드의 농촌 출신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의 학자들은 그가 브레다라는 도시 출신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1551년 화가 조합에 등록한 이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그는 알프스를 통과하여 귀국을 하였는데 이때의 이탈리아 여행은 이후 그의 화풍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알프스 산중을 그린 풍경 소묘는 안트베르펜의 출판업자 히에로니무스 코크에 의해 동판화집으로 간행되어 동판화가로서의 지위도 확립하게 됩니다. 

 

그는 유럽 미술사상 최초로 농촌 사회의 현실과 농민들의 순박한 모습 그리고 그들의 소박한 삶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화가이기도 합니다. 피터르 브뢰헐은 '농부 브뢰헐'로도 불리는데 그가 농부의 생활을 매우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작업을 위해 농부로 가장하여 그들과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피터르 브뢰헐의 작품에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의 이러한 그림들은 매우 유머러스하게 보이지만 동시에 작품 속에 당시의 사회를 강하게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시선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그의 사회 비판적 성향은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짙게 나타나게 되어 당시 식민지를 통치하고 있던 지도자들에게는 눈엣가시와도 같은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당시 네덜란드 미술관 중 그의 작품을 전시하겠다고 나선 미술관이 없었으며 1569년 사망하기 직전에는 본인이 죽은 이후 아내에게 해가 될 것이 염려되어 그의 작품들 중 다수를 불태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불과 40여 점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대부분의 작품이 네덜란드가 아닌 다른 나라에 가 있으며 그중 오스트리아의 빈 미술사 박물관이 가장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100개가 넘는 속담을 그림으로 표현한 <네덜란드 속담(1559년)>, 2백 명이 넘은 아이들이 하고 있는 90여 가지의 놀이를 보여주고 있는 <아이들의 놀이(156)>, 창세기 바벨탑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 <바벨탑(1563)>, 한 해의 열두 달을 연작으로 그린 '계절 연작' 중 하나인 <눈 속의 사냥꾼(1565년)> 등이 있습니다.

 

따스하면서 동시에 서글픔이 느껴지는 작품 <농가의 결혼식>

 

작품 <농가의 결혼식>은 어느 가난한 농가에서 치러지고 있는 결혼 잔치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곳 내부에는 건초가 가득 쌓여 있고 벽에는 한 다발의 밀짚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평소 곡식창고로 사용되고 있는 곳으로 보입니다. 밀짚 더미와 같은 황금색이 작품의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와 함께 흰색의 앞치마, 붉은 상의, 푸른색 상의 등이 세심하게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선명한 인상을 남겨 주고 있습니다.

창고 벽의 일부에 짙은 녹색 천이 드리워져 있는데 그 아래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여인이 바로 이번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입니다. 두 손을 곱게 모으고 양 볼이 발그레하게 그려진 신부는 옅은 미소로 행복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부의 옆에 흰색 두건과 검은 모자를 쓰고 있는 두 노인은 신부의 부모로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그림에서는 신랑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한편 식탁 한쪽 끝에 어떤 남자가 수도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남자의 외모가 브뢰헐의 초상화와 닮아 있어 본인을 그려 넣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농가의 결혼식>은 시끌벅적한 잔치 분위기가 그려져 있는 따스한 풍속화의 느낌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속에서도 어려운 농촌의 현실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흥겹게 잔치를 즐긴다기보다는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특히 앞쪽에 보이는 어린아이는 손가락까지 쪽쪽 빨면서 접시에 남아 있는 음식을 모두 핥아먹고 있습니다. 또한 차려져 있는 음식들도 소박하며 몇 종류에 지나지 않고 있습니다. 즉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결혼식을 축하하기보다는 우선 먹는 일에 집중을 해야 할 정도로 농민의 삶이 팍팍하고 힘겨웠다는 것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터르 브뢰헐의 작품들이 좋은 이유

처음 브뢰헐을 좋아하게 된 건 TV에서 그의 <바벨탑>이라는 작품을 보고 나서입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한 방 가득 걸려 있는 브뢰헐의 다른 작품들을 본 이후로는 그의 모든 작품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브뢰헐의 작품들은 우선 사랑스럽습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글동글하고 따뜻하게 그려져 있으며 모두 각기 다른 제스쳐를 취하고 있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등장 인물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작품에서는 아픔도 느껴집니다. 농민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낙관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현실은 결코 달콤하지많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브뢰헐의 시선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렸을 당시의 화가의 진심이 느껴지기에 그의 모든 작품들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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